성공하려면 운대가 좋아야 한다. 이를 테면 ‘운빨’이다. 그 사람의 운이 축 처져있는데 행복한 일이 생길 수 없다. 운대는 팔자(八字)라고 보아야 한다. 사람의 팔자를 바꾸려면 우선 성격을 변화시켜야한다.
그러면 사람의 성격은 바꿀 수 있을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하지 않은가. 뜻하는 바를 성취하려고 결단하고 변화를 시도하지만 항상 길어야 삼일이다. 성격도 바꾸려면 엄청난 끈기와 노력이 필요한 만큼 타고난 성격과 기질을 바꾸기 힘들다는 말이다. 하물며 내가 상대방의 허물은 고칠 수 있을까?
부처님의 삼불능 이야기
부처님의 이야기 중에 '삼불능(三不能)'이란 것이 있다. 인연 없는 중생은 부처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가르침이다. ‘세가지 할 수 없는 것’이란 뜻의 삼불능을 하나씩 살펴보자.
불능면정업중생(不能免定業衆生). 자신의 업(業; 선악의 행업으로 쌓은 과보. 카르마)을 닦지 않는 중생은 부처님도 제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과거에 자신이 쌓은 업은 과보를 불러오는 것이므로 곧 숙명(宿命)인 셈이다. 부처님은 비록 무상의 지혜와 능력을 지니셨어도, 중생 자신의 업보는 그 자신이 깨우쳐야만 소멸시킬 수 있다.
불능도무연중생(不能度無緣衆生). 인연 없는 중생은 부처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부처님은 중생의 숙업과 근기를 다 알고 계시지만 아무리 부처님이라도 마주보고 대화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중생은 구제할 방도가 없다. 그래서 부처님도 살아생전에 인연이 있는 지역의 중생들만 제도하신 것이다.
불능진중생계(不能盡衆生界). 전지전능하신 부처님도 세간의 일체 중생을 한꺼번에 다 구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 문장은 앞의 두가지 대목과도 서로 상통하는 바가 크다. 무한(無限) 무진(無盡)의 세계는 그러한 중생들이 지은 업의 소산이다.
우리는 늘 가까운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
중생은 조화롭지 못한 마음에서 시시각각 업을 짓고 그 업에 의해 창조된 각자의 세상에서 고통받고 산다. 그렇기에 사악하거나 마음이 빈곤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그가 창조한 부정적인 세계의 영향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늘 ‘관계’로 인해 괴로워하는데 이는 상대방이 만든 세계의 영향력을 받기 때문이다.
‘관계’로 인해 벌어지는 부정적인 일들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이를 테면, 동업관계가 흔들려서 마음 고생하고 사기를 당하거나, 직원이 회사돈을 횡령해 도주하기도 한다. 회사의 핵심기술을 빼돌려 경쟁사에게 금전을 받고 양심을 팔고, 스승을 배신하여 허위사실로 기망하여 자신을 돋보이려는 제자, 하는 일마다 망하여 가족과 지인에게 손을 벌려 돈을 가져가기만 하는 한량, 과대망상과 정신병으로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괴롭히는 행위(인격장애자), 불륜을 습관처럼 저질러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고통주는 행위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만 해도 수도 없이 많다.
어쩌면 일상에서 나 자신이나 가족이 피해자나 가해자일지도 모를 일이다.
사업이 잘되거나 대박의 조짐이 있겠다 싶으면 그 사람 주변에 예기치 않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상생할 수 있는 사람이 올 수도 있고,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일을 도모하다가 도중에 이해관계로 인해 일이 틀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일이 잘될때 사람을 조심하라.
부정적이고 박복한 에너지는 쉽게 전염된다
부정적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은 생각과 말투가 늘 부정적이고 땀흘려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상대방이 이뤄놓은 것에 무임승차할 기회만 엿본다. 또한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가득차서 매사에 일이 풀리지 않으면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 는 원망의 말만 되풀이 하고 원인을 타인에게 돌린다.
자기애가 강하여 온통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사람이 나르시스트(Narcist)다. 자신의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큰 것으로 착각하고, 자신만 잘되면 의리도 도덕관념도 필요없다. 상대방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이기적인 사람과 대화하면 소통도 안되고 답답해서 홧병이 나고 만다. 그들은 머리속에 생각이 많아서 늘 눈빛이 총명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짓는다.
부정적인 사람은 동정심을 유발하여 상대방의 호의를 사거나, 항상 과거부터 현재까지 불행했던 역사를 늘어놓아 동정심을 사고, ‘내가 피해자요 착하게 산 댓가로 이렇게 어렵게 살다’고 자주 말한다.
이런 사람들을 동정심에 도와주기 시작하면 점점 자신의 재산이 줄어들고 에너지마저 빼앗기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끝내 이용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도와준 사람을 험담하고 그 주변사람들까지 이간질하여 인간관계도 끊어놓는다.
고통과 눈물로 위장한 사기꾼들은 달콤함과 감언이설로 마수에 걸려들 사람을 용케도 잘 찾는다. 자신을 과대포장하여 성공한 분들의 이름을 말하여 친분을 과시하고 거짓 성공담으로 늘어놓아 신뢰를 쌓는다. 말끔한 외모와 명품으로 상대방을 현혹하거나 혹은 가난하고 수더분한 행색으로 상대방을 안심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마침내 원하던 돈을 보는 순간 변심하여 배신하고 거짓말을 일삼는다.
이들은 얻어먹고 받는데만 익숙하고 하고 베풀면 손해본다는 생각을 한다. 상대방의 손해가 자신의 이익인 셈이다. 이런 심보로 사는 사람들은 베푼 공덕이 없어서 평생 박복을 면치 못한다.
풍요는 좋은 운을 끌어들인다
반면에 풍요로운 사람은 여유와 풍요 성장의 세계를 창조한다. 긍정적이고 도전적이다. 실패하는 사람은 실패가 두려워 도전조차도 두려워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실패를 성공의 과정이라 하고 매번 장애물을 부딪혀 깬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자는 단지 생각의 한 끗 차이로 갈라지는 것이다.
풍요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은 사소한일이나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는 넒은 시야를 가졌다. 투자할 시기를 정확히 알고 시원하게 베팅한다. 필요한곳에 물질을 적시적소 쓸줄 아는 배포가 있다.
풍요는 긍정의 의미가 만들어 낼수 있는 창조물이고 길이다. 풍요를 창조하다보면 운이 따르고 복이 굴러들어오며 마치 자석의 끌어당김처럼 내 풍요로움에 도움을 줄 사람들과 인연이 맺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운 좋은 사람도 흙탕물 한방울에 무너지는 순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와 어울리는 사람들은 곧 "자신"의 거울이다. 생각이 빈곤한 사람과 어울리면 그들의 부정적인 세계에 물들어 나쁜 기운 뿐만 아니라 그 업業까지 대신 짊어질 수도 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말이 있다. 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 나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뜻이다.
부정적이고 박복한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도와주면 나도 똑같이 부정적이고 박복한 기운에 물들고 만다. 운도 없고 팔자가 사나와 박복함을 면치 못하는 그런 사람과는 인연을 맺지 않는 것이 좋다.
이래도 당신은 불필요한 인연을 끊지못해 빈곤貧困함을 함께 짊어질 것인가?
Namo Buddhaya!
붓다가아샤 주지 동국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