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말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3김이 모였을 때 김종필 선생이 했던 말이다. 꽃샘추위는 여전히 꽁꽁 언 시민들의 마음을 움츠리게 한다. 제비 몇 마리에 봄이 오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입춘(立春)이 지났다. 한 해의 시작을 기리고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글귀를 집안 기둥이나 문짝, 대들보에 붙이는 날이다. 글귀를 적은 종이가 입춘방(立春榜)이고 가장 흔히 쓰는 말이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다.
입춘방은 원래 문신들이 지은 시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뽑아 연꽃 문양 종이에 써서 대궐에 붙이던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글귀를 붙일 때는 입춘이 시작되는 당일 시에 맞춰서 붙여야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전날 23시 59분이 입춘이지만 절기상 입춘은 전날 23시 30분에 시작한다.
입춘이 지나야 비로소 봄이 시작된다. 불교에서는 입춘방과 입춘 부적을 나눠주고 때로는 삼재풀이 기도를 하기도 있다. 입춘 때면 삼재(三災)란 말을 자주 쓰는데 삼재란 무슨 뜻일까.
선조들은 역병, 기근, 전쟁의 세 가지를 삼재라고 불렀다. 삼재팔난(三災八難)이란 말도 자주 썼는데, 팔난(八難)이란 배고픔, 목마름, 추위, 더위, 물, 불, 칼, 전쟁으로 인한 삶 어려움을 의미한다. 삼재는 왜 나에게 오는 것일까. 우주는 태어나고 머물고 무너지고 사라짐의 과정을 반복한다. 한자로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다. 태양이 밝으면 어둑해지기 시작하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조상들은 흥망성쇠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재난도 때가 되면 온다고 여겼다. 삼재는 일종의 ‘재난’을 뜻하는 말이다. 이 재난은 12년을 주기로 3년씩 들어와서 머물다 나간다. 불교에서는 삼재를 말할 때 작은 삼재와 큰 삼재로 나눠 설명한다.
작은 삼재는 일상에서 맞게 되는 재난이다. 우리가 살면서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일, 굶주림, 근심, 우환, 폭력과 전쟁 등이 모두 작은 삼재다. 큰 삼재는 물, 불, 바람에 의한 자연재해를 말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현실이 모두 삼재인 것이다.
물, 불, 바람에 흙을 더하면 세상 만물의 근원이 된다. 종교적 관점에서 물은 분노, 불은 욕심, 바람은 어리석음에 비유한다. 분노는 사람의 마음을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욕심은 사람을 불태우며, 어리석음은 끊임없이 우리 마음을 흔들고 미혹시킨다.
삼재를 해결하려면 업을 잘 타고 나야 한다. 그래서 항상 말과 행실을 조심하고 시간 날 때마다 기도수행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반야심경에 보면 ‘깨어있는 사람은 집착을 놓고 모든 고통과 재앙으로부터 벗어나며 언제나 고요하고 평화롭다’고 했다.
두려움이 두려움을 부르는 것처럼 재앙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고 생각해야 실제로 그렇게 된다.
붓다가야사 주지 동국